한국 반도체 산업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1974년 한국반도체 지분 인수는 삼성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꾼 결정적 계기로 평가받는다. 당시 만 32세였던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은 그룹 내 반대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사재를 투입해 반도체 가능성에 베팅했다.
하이라이트
- 1974년 이건희 선대회장이 사재 50만달러(약 2억원)로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하며 삼성의 반도체 진출이 본격화됐다.
- 삼성전자는 1983년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1992년 글로벌 D램 시장 1위에 올랐다.
- 198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과 일본산 제품 보복 관세 등 시장 환경 변화가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 기업 성장의 기회로 작용했다.
한국반도체 인수와 초기 투자 배경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반도체 업계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1974년 한국반도체 지분 50% 인수를 오늘날 한국 반도체 산업의 탄생과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으로 보고 있다. 당시 삼성그룹은 전자 산업에는 진출했지만 반도체 사업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고, 이 인수를 계기로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한국반도체는 미국 모토롤라 출신 강기동 박사가 1974년 경기도 부천에 설립한 국내 최초의 반도체 제조업체 중 하나였다. 경영난으로 인수자를 찾던 상황에서 당시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건희 선대회장은 사재 50만달러를 투입해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는 당시 환율로 약 2억원, 현재 물가 기준으로는 약 3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그가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후계자로 유력해진 시점은 이 투자로부터 약 3년 뒤였다. 그룹 내 자신의 입지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 산업으로 반도체를 선택한 셈이다. 조태훈 건국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이병철 창업회장이 반도체 진출 회의를 주재했을 때도 삼성 사장단의 약 3분의 2가 반대했다.
D램 개발 성과와 한국 반도체 산업의 확장
한국반도체 인수 이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냈고, 1983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의 역할이 컸지만, 당시 부회장이었던 이건희 선대회장도 공장과 일본을 오가며 기술 확보에 직접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1987년 이건희 선대회장이 회장에 취임한 시기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재편기와 맞물린다. 일본 기업들의 공격적 증설로 D램 가격이 급락했고, 인텔 등 미국 기업들은 D램 사업에서 철수했다.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과 1987년 미국의 일본산 제품 보복 관세는 삼성전자와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는 기회 요인으로 작용했다.
같은 흐름 속에서 1985년 현대전자는 64K D램 양산에 성공했고, 금성반도체도 D램 개발과 생산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스택 방식 D램 셀 구조 채택과 6인치 웨이퍼 선제 도입 등 제조 공정에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을 이어갔다. 1988년에는 삼성전자가 삼성반도체통신을 흡수합병하며 완제품과 부품 사업을 한 회사 안에서 운영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 같은 투자와 기술 전략의 결과로 삼성전자는 1992년 글로벌 D램 시장 1위에 올랐다. 업계에서는 이 성공 경험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으로 이어지며 삼성그룹 전반의 경쟁력 강화에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임형규 전 사장은 삼성의 반도체 성공에 대해 뛰어난 인재와 정부 지원이 함께 작용했으며, 이건희 선대회장이 산업 특성을 이해하고 기술자들을 모아 강한 팀을 만든 점이 중요했다고 평가했다.
앞서 우리 기사에서는 미국 인플레이션 재부각과 장기금리 상승, AI 인프라 투자 회수 우려가 겹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가 프리마켓에서 급락한 흐름을 짚었습니다. 특히 AI 투자 기대는 남아 있지만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증권사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 간 괴리가 확대되고, 투자심리 위축으로 목표가 수렴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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